면산-석채,정과사
석채,천교
노예에서 후조 황제가 된 전설적인 인물 석륵! 기원전 316년 이곳 면산에서 진나라 군대를 패퇴시키고 천하의 패권을 잡았다. 석채(石寨)는 군사를 일으킨 석륵이 면산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만든 최고의 군사방어시설이다. “동굴에 백만의 하늘군대가 있다”는 말은 이 전투에서 유래됐다. 하늘 위에 세워진 다리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천교(天橋)는 황제가 된 석륵이 만들었으며, 바닥에서 높이가 300m에 이른다.
5호16국 시대 후조(後趙)의 초대 황제 석륵은 후조를 16국 가운데 최강국으로 키웠다.
젊었을 때 낙양(洛陽)에 와 행상을 하다가 소작을 지어 먹기도 했는데, 담력이 세고 무예에 능했다한다. 20살 무렵 서진 병사에게 잡혀 산동(山東)에 노예로 팔렸다가 군도(群盜)의 수령이 되었다. 진(晉)나라의 장군 왕준(王浚)을 멸하고 왕위에 올라, 국호를 조(趙)라 하고 양국(襄國)을 도읍으로 삼았다.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도 유능했고, 귀순한 한인(漢人)들의 제어에도 뛰어난 수완을 보였으며, 학교도 세우고 학자도 중용했으며 관리 등용에도 능했다. 나중에 불승 불도징(佛圖澄)에 귀의했다한다.
산시성은 춘추전국시대 진나라가 있었던 곳이고, 정치인으로서 당태종 같은 걸출한 인물이 있었던 곳이어서 이곳사람들은 노예출신으로서 진나라를 멸한 석륵을 달가워하지 않는듯 따라서 훌륭한 인물이었음에도 석채와 천교이외에 별다른 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것으로 보임
태극8괘를 흔히 볼수 있는 곳
절벽에 걸려있는 궁전
여기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많이 후달릴듯
석륵이 이런곳에 군사와 식량을 비치하고 요새화함. 적들이 어떻게 이런곳을 침입하겠는가?
석채 입구
기와지붕위의 장식들이 화려함
정과사
정과사는 면산 꼭대기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고공사찰인데 당나라 때 3분, 송나라 때 3분, 금나라 때 1분, 원나라 때 1분 등 모두 8분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중턱에 있는 운봉사에서 정과사로 가는 방법은 세가지. 첫째는 쇠밧줄을 타고 30m 정도의 절벽을 오르는 길이다. 원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연인들이 이 굵은 쇠밧줄에 자물쇠를 걸어 놓으면 헤어지기 않는다 하여 수많은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둘째는 절벽에 선반처럼 매달린 400여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길이다. 셋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오르는 방법도 있다.
운봉사에서 정과사로 올라가는 400여개의 계단 길 .
밑에서 보기에는 만만해 보이지만 막상오르다 보니 다리가 후덜거려 사진을 찍을수 없을정도
생각보다는 길이 상당히 넓은데도 벼랑박에 딱붙어서 올라갈 수 밖에 없었슴
예전에는 위 계단으로 오르지 않고 여기 두가닥의 쇠줄을 잡고 꼭대기로 등반하였다는 데
지금은 연인들의 사랑의 자물통으로 주체를 못할 정도
소원도 자물쇠에 묶어 기원하는 듯
자 올라가 보자구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겨우 찍은 사진한장
그런데 정과사로 통하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정과사를 관람후 다시 이계단으로 내려오게 되었슴 .공포2배!!!
계단을 다 오르면 정상 9부능선을 감아돌아 정과사를 찾아가야 함
보인다.
이런 아기자기한 것도 벽에 장식되어있슴
등신불이 안치된 곳
이곳에서 등신불과 각종 사리를 친견하였고 사진도 찍었지만 이 사진만 공개하기로 함 .